매듭이야기 > 한국매듭의 용도
 
 
조선시대에는 보통 짙은 색 치마에 엷은 색 저고리를 받혀 입었기 때문에 긴치마와 짧은 저고리 사이에 장식하는 노리개가 액센트accent를 이루는 대표적인 장신구였다. 대례복 · 소례복 · 평복에 따라, 계절에 따라, 외출할 때, 참석하는 잔치에 따라 분별있게 장신구를 사용하였음으로 노리개의 종류가 참 많다. 노리개는 우아한 우리의 전통 의상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해 주기 때문에 궁중은 물론 상류층과 평민에 이르기까지 돌쟁이에서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되었다.
<대삼작노리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김희진 1983년 作>
 
 
주머니는 소지품을 넣고 입술을 여며서 허리띠에 차거나 들도록 만든 물건을 말한다. 한자로는 ‘囊’이라 하고 지방에 따라 조마니, 줌치, 안집, 개와속 등으로 불렀다. 우리 전통옷에는 자질구레한 휴대품을 간단히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주머니는 요긴한 생활용품으로 일찍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 주머니의 종류는 형태 · 용도 · 장식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형태에 따라서는 둥근 모양의 두루주머니(夾囊)와 각이 진 귀주머니(角囊)의 두 종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향주머니香囊, 수저집, 안경집, 부채주머니扇囊, 시계집, 담배쌈지, 도장주머니, 약주머니藥囊, 붓주머니筆囊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주머니를 장식하는 방식과 재료에 따라 금박을 입힌 부금附金 주머니, 수 주머니, 진주 주머니 등으로도 나눌 수 있다.
 
   
<수장생무늬오방주머니,
국립중앙박물관>
<진주낭, 국립고궁박물관>
<수봉황무늬약낭, 국립중앙박물관>
 
 
<수칠보무늬필낭, 국립고궁박물관>
<수연꽃무늬수저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희진 作, 자수 이경주)
 
구한말 우리나라에 방문한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에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쓰개류에 관한 언급이 많다. 특히 여성들의 조바위나 아얌의 화려함에 관한 언급이 많은데, 조바위나 아얌은 조선말기 여성들은 날씨가 쌀쌀한 가을이나 겨울에는 방한을 겸한 예복용으로 외출할 때 썼다.
 
 
<조바위,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아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희진 作)
 
가례도감의궤의 기록 중에 너울에 유소를 장식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대 박물관이 2002년에 발굴한 파평윤씨 모자 미라와 함께 출토된 유소는 조선전기 매듭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편년자료로 1566년경의 연도가 있는 귀한 자료다. 세가닥 꼰끈으로 도래, 삼정자, 생쪽, 가지방석, 좌우에 벌매듭을 맺은 석씨 매듭을 맺고 끝에는 방망이 술을 쌍으로 느린 유소이다. 좀 굵은 듯한 꼰끈으로 맺은 유소 길이는 52. 5cm로 섬세한 라(羅)로 지은 너울에 달았다고 보기에는 유소의 끈이 굵고 매듭구성도 무게 있게 느껴져 단정하기 어렵다.
 
우리 조상들의 오랜 삶의 역사 속에는 자연을 즐기며 정신을 수련하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문집과 시문 등을 살펴보면 좋은 자연 경관을 찾아다니며, 시, 서를 논하고 음악과 술과 더불어 노니는 것을 ‘풍류’라 하여 생활에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풍류는 삶의 지혜와 마음의 여유를 갖고 멋스러움을 즐길 줄 아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일반적인 생활상으로 나타났다. 선비들이 풍류와 멋을 누리는 데에는 몇 가지 몸치장이 필요했다. 갓, 허리띠, 부채, 주머니, 안경집 등이다. 이러한 장신구 등을 착용함으로써 조선시대 선비들은 나름의 멋과 개성을 표출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장신구들의 착용에 엄격한 유교질서와 신분직위에 따른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지만, 절제와 검소함을 생활이념으로 하는 선비의 곧은 정신에 걸맞는 단아함과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