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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이야기 > 한국매듭의 전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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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토용 중에 경주시 용강동 석실고분에서 1986년 발굴된 남자상(경주 7497)은 넓은 소매 속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는 자세로(높이 20.5cm) 복두의 뒷편에 두 가닥의 끈이 길게 늘어지고 왼쪽 옆구리에는 매듭장식이 보인다.
<신라 토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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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범종인 <상원사 범종>(725년),
<성덕대왕신종>(771년)에는 주악비천상이 양각되어 있다. 이 두 비천의 천의 자락 사이에 보이는 술 달린 영락 장식이 하늘을 나는 비천의 모습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경주 남산의 <석조여래좌상>(8세기 후)은 특히 왼쪽 어깨 뒤에서 넘어온 띠를 가슴 위에서 한 번 매듭을 짓고, 다시 두 줄로 꼬아 길게 술처럼 늘어뜨리고, 가슴 중앙에도 매듭 장식이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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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 나라의 다회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정되는 점은 일본식 복식에 쓰이는 “구미히모” 중에 “시라기구미(新羅組)”, 끈을 짜는 틀의 종류 중에 “고라이우치(高麗打)”라고 불리는 것이 있어 우리 나라의 다회 기법이 신라, 고려 때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회 명예회장 김희진이 1974년 3월 東京都人間國寶 川島德太郞 先生에게서 들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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